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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멜로영화 끝판대장, 동사서독
    사쿠라여 2016. 2. 18. 17:11



    껍질은 무협, 내용물은 뼛속까지 멜로





    개봉당시에는 망작과 걸작이라는 극단의 평가를 얻었다.

    망작이라고 했던 이들의 상당수가 아마 홍콩영화 특유의 무협을 기대했을 것이다.

    살인청부 중개사라는 주인공의 직업과

    김용의 대하 역사무협소설을 원작으로 다룬 점이 남성들을 유혹했을 테지만

    뚜껑 열어보면 유혈 낭자하는 칼부림은 이 갈증을 달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과묵한 남자가 은연중에 자신의 속내를 비치듯이 의도를 전달하고 있어

    화끈한 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심드렁하고 무뚝뚝한 영화지만 일단 관객을 붙잡아 두는 힘은

    영상미와 음악, 그리고 쏟아지는 시적인 대사들이다.

    이것들의 조화가 특유의 동양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러닝타임 내내 영화를 장악한다.

    거기에 차분하고 처량한 등장인물들은 미묘한 융합을 빚어내고 

    이런 유기적인 어울림이 하나의 뉘앙스로 통일된다. 

    영화라는 장르가 종합예술인 것을 왕가위가 이 영화로 그대로 보여준다.












    국내의 한 배우가 개봉영화의 무대인사 중에 영화소개 멘트로

    "한번 보시면 정말 재밌고, 두번 보시면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라고 했었다.

    '그럼 극장에서 두 번이나 보란 얘기야?'하며 웃었던 적이 있는데

    잘 만들어진 영화는 정말로 그러하다.

    상징과 은유의 예술, 복선을 깔아놓고 의도한 곳에서 터뜨리는 예술,

    그런 영화는 볼수록 의미가 새롭고 놓쳤던 부분을 알아가게 된다.

    의미가 크든 작든 쓸모없는 씬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얼마나 거대하단 말인가.

    나레이션 목소리도 비슷하고 인물의 차림새와 외모도 비슷하며 시간흐름도 뒤죽박죽이기까지하여

    전반적으로 모호한 이 영화는 곱씹을수록 명확해지고 진가를 드러낸다.







    누군가 내게 멜로영화 한 편 혹은 최고의 영화를 물어오면

    대단한 비밀 하나를 말해주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추천한다.

    무협영화로 기대치 않고 주인공 구양봉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듣는다는 마음으로 편안하게 본다면,

    시간이 흘러도 휘발되지 않고 잿가루로 남을 사연을 품은 이 영화는

    장담건대 어떤 멜로영화보다 큰 임팩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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