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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슬 포.기.한.다.
    사쿠라여 2014. 8. 18. 15:01









    몇 해전 동네에서 술마시고 귀가하던 중 얼큰한 기분이 참으로 감미로와

    늘 술에 취한 채 살면 얼마나 좋을까, 했던 적이 있다.

    나는 또한 매운 탄수화물 중독자다.

    라면의 널리 알려진 해악만 아니라면 나는 당장에 삼시세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살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 같았다.

    비린내 풍기는 꿀돼지가 되고 말 것이다.





    중독된 것으로부터 


    중독된 것으로부터 벗어날 때는 줄여가며 마침내 0으로 도달하기보다 단번에 떨쳐내는 것이 훨씬 쉽다.

    할까, 말까, 먹을까, 말까 하는 절제와 탐욕의 장대 위를 걷는 것이 우리를 녹초로 만들지 않던가.

    협상테이블은 언제나 피로를 유발하는 법이다.

    아귀귀신을 애처럼 달래며 밀가루와 술을 끊은지 100일이 도래했다.





    이건 좋다




    아랫배 빼기는 실재한다


    개콘 김지민처럼 단시간에 빠지진 않았지만 50일 가량 지나면서 

    허리띠 버클이 언제 풀렸지, 하며 깜짝깜짝 놀라며 더듬기 시작했다.

    걷고 뛰고 팔굽혀펴기 죽어라 해도 몇년간 차도없이 슬금슬금 차오르기만 했는데 

    밀가루와 술이 뱃살엔 주적임이 분명하다.





    커다란 황금바나나







    어쨌거나 정갈해졌다


    실제로 늘어지고 덕지덕지 기름 낀 듯한 비대한 느낌이 사라졌다.

    하지만 질병에 걸려 밀가루를 끊는 것보다

    자기관리의 즐거움을 느끼고 싶거나 뭔가 건강한 기분을 추구하는 게 아닐까.

    하루가 다르게 몸이 달라짐은 느낄 수 없지만 '왠지 어제보다 몸이 가벼운데?' 하는 뻔한 자기기만과

    '나는 자기관리하는 놈이다'가 상승효과를 일으키며 생활에 활력이 더해진다.

    사람을 빛나게 하는 팔할은 자신감으로 곧추세운 자세가 아니던가.





    이것이 힘들다



    핼쑥해졌다


    이것은 전적으로 식단조절의 패배다.

    일상에서 밀가루는 정말로 어마어마하게 많다. 어묵도 생선과 밀가루를 반죽한 음식이고

    무료할 때면 먹는 라면, 햄버거, 과자, 아이스크림콘, 조각케익, 모두 밀가루다.

    그리고 전분인 당면이나 쌀로 만든 떡이라 해도 애매하면 닥치고 금지했다.

    그래서 대체식품을 늘 준비해놓고 끼니사이 보충해주거나 반찬으로 식탁에 올려야 하는데

    안먹는 음식 가짓수가 너무 많아져 음식 자체를 멀리하게 되는 상황에 놓여졌다.

    허리도 줄었지만 광대도 툭 튀어나와 초췌해져 버렸다.

    팔굽혀펴기와 스쿼트, 버피테스트를 병행했기 때문에 단백질이 부족하지 않게 해줘야 한다.

    나는 주로 찐 새송이버섯, 찐 닭가슴살, 찐 계란을 돌려가며 먹었다.

    각 메뉴는 오랜만에 먹으면 향기롭게 맛있지만 곧 토악질이 치솟는 때가 온다.

    특히 새송이버섯은 식감도 육고기와 비슷하고 버섯 특유의 향도 은은해 

    '나는 소고기보다 버섯류가 죠아'라며 영원할 것처럼 쪄댔지만

    일주일 쯤 먹으면 비에 젖은 두꺼운 박스를 씹는 맛이 된다.

    가슴살로 갈아 탈 때가 온 것이지.




    꿈에 밀가루 음식이 등장한다


    ....................................................................................................................


    솔직히 말해 고도의 자제력을 요구하진 않는데

    이게 은근 스트레스를 주나보다.

    나의 본분을 망각하고 피자를 처먹는 꿈을 꿨다. 먹다보니 4조각 째였는데 밀가루임을 깨닫고

    이성을 잃어 분노와 모멸감으로 그 자리에서 라지 한판을 추가로 해치웠다.

    라면을 먹다가도 소스라치게 놀라고 새우깡을 한 주먹씩 털어넣고 울면서 우걱우걱대기도 했다.

    술과 밀가루를 얼마나 적게 먹느냐가 아니라 먹느냐 안먹느냐의 문제이기에

    먹어선 안된다는 불안감이 악몽으로 투영되었다.




    어른들과의 자리


    모두가 그렇진 않으시지만 보통 어른들은 아랫사람이 과식을 하면 좋아하고 술 잘 들이키면 기뻐한다

    쑥쑥 클 나이가 지났는데도 먹는 것만 봐도 마냥 좋으신 가보다.

    하지만 그 분들에게 내가 술 한잔, 빵 한주먹 먹는건 사소한 일인 반면

    나는 이 이벤트를 자신에게 선포한 약속에 대한 것이고,

    이 성패는 기억과 함께 자존감으로 남을 것이라는 비장한 문제로 대했다.

    사소한 자존감의 등락이 선순환이 되기고, 악순환이 되기도 한다.

    '것 봐, 난 한다면 하는 놈이야' 와 '썅, 또 실패했어'는

    더 진취적인 젊은이가 될 것인지, 패배주의에 또 하나의 기억을 추가할 것인지의 문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행동으로 목격하는 기간인 것이다.





    "좀 적당히 해"


    아까도 말했듯 밀가루는 도처에 있다.

    이것을 얼마나 줄이느냐가 아니라 '모 아니면 도' 식의, 먹느냐 안먹느냐다.

    그래서 자연히 간식거리 하나에도 빠르게 눈으로 훑어 재료를 탐색하게 되는데

    그 모습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치 자신이 금식을 해야 할 것 같은 피로를 유발한다.

    남자가 가리는거 없이 먹성좋게 퍽퍽 줏어먹기도 해야 하는데 

    나는 함량 따지며 깨작거리는 소녀가 되어 주변인들에게 가시방석이 따로없었다.





    목표는 120일 입니다.

    100일 도전이었는데 TV로 110일 성공한 사람을 본 이상

    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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