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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가, 막시무스
    사쿠라여 2014. 11. 5. 20:06



    우리 가족은 여섯이다.
    나에게 가족이란 사람을 너머 강아지 힌둥이와 작은 통안에 기르는 소라게 막시무스까지 포함된다.
    개와 소라게의 수명, 그리고 남겨진 자의 절망을 합산한 결과, 
    나는 이들 중 가장 오래 살아남아야 할 의무와 책임을 발견했다.
    그리고 떠난 이의 장례를 정성껏 치를 생각이다. 물론 머나먼, 또는 반드시 머나먼 이야기어야 하겠지만.





    가장 막내인 소라게 막시무스는 3년전 쯤, 비오는 날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고 걷던 중 만났다.
    작은 회색 돌멩이가 어디론가 바쁘게 바닥을 기고 있었다.
    번거롭기도 하고 소라게는 키워본 적이 없기에 대충 안전한 자리로 옮겨두고
    50m쯤 걷는데 기분이 영 마뜩지 않았다.
    발길을 돌려 놀라지 않도록 주먹으로 감싸 주방에 노는 그릇 하나에 던져두어 며칠을 방치함으로
    나는 죄책감 회피에 대충 성공했다.
    시름시름 죽어갈 줄 알았던 놈이 가끔 수돗물로 소라껍데기만 적셔주는 정도로 일주일을 살아 내기에 
    기특한 놈, 우리는 인연이다 싶어 온종일 소라게에 대해 검색한 후,
    채집통을 싸게 구해 흙을 깔고 소금물과 맹물로 환경을 조성해 주었다.
    역시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다.



    긔여미 막시무스.





    소라게는 생명력이 질겨 아무거나 잘먹고 극소량의 음식으로도 생활이 가능하다.
    하지만 은근 까다로워 몸을 숨길 은신처와
    수직운동을 좋아하는 생물의 특성상 타고 놀 수 있는 '타워'가 필요해 장난감 몇 개를 넣어 주었다.
    안어울리게 외로움을 많이 탄다고 하여 인터넷을 비슷한 크기의 친구를 주문해 소개시켜줬는데
    이놈은 비실대다 며칠 움지이지 않기에 손가락으로 들어올려보니 집게발을 축 늘어뜨린채 죽어있었다. 
    잘못한 거 없이 드는 그 죄스러움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작은 공간에 갇혀있는 막시무스가 측은해 베란다 작은 화분에 풀어주곤 
    빠르게 사라져버린 그 놈 때문에 쇼파니 가구 틈이니 온 집안을 헤집은 적이 있었다.
    2주를 훌쩍 넘기고 실종된 그 장소에서 흙더미를 뒤집어 쓴 채 부활한 막시무스가 얼마나 반갑던지.




    한번은 며칠째 꼼짝않고 흙 속에 처박혀 있기에 조심스럽게 흙을 파봤더니 집게발들이 산산조각 나있었다.
    소리도 없이 무지개다리를 건넌 줄 알고 볕 좋은 곳에 묻어주려고 껍질을 들어보니
    분홍색 집게발이 예쁘게 가지런하였고, 말로만 듣던 갑각류의 탈피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풍전등화 생명을 거둔 것은 나였지만 아무도 가르쳐 준 적 없는 섭리를 홀로 해내는 모습에 나는 크게 감동을 받았다. 
    작은 채집통 속 대자연이라고 할까.
    나는 그날 사랑으로 삶은 계란을 막시무스에게 선물했다.




    소라게에게 탈피는 생명을 좌우하는 큰 이벤트였고 많은 수가 과정 중 무지개다리를 건넌다 하기에
    나에게도 막시무스에게도 탈피는 스트레스였다.
    이 기간에 소라게는 극도로 예민해 만지는 것이 금기에 가까워 과정도 엿볼 수 없었고
    기다려주는 것이 최선이었다.




    3년간 총 대여섯번의 탈피를 했고 마지막 탈피에서 막시무스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흙을 뒤적거려 엉망이 된 담수와 정수에만 신경을 썼었지, 밥을 준 것이 언제였는지가 나를 심하게 괴롭혔다.
    굶어 죽은 것은 아닐까.
    치열하게 기억을 뒤져 그리 멀지 않는 때에 고구마 한 조각 던져 준 것을 끄집어 냈다.
    와중에 드는 안도감은 책임회피 같아 마음이 썩 좋지 않더라.




    집 앞 큰 나무가 있는데 얕게 땅을 파고 묻어주었다.
    개미와 잡벌레가 생명력의 나눠받고 막시무스는 대자연이 될 것이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고 자연을 더 사랑해야 겠다.
    아, 슬프다. 생명은 재미삼아 키우는 게 아니다.
    잘가라 사랑하는 막시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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